예수님의 후반전을 위한 성령이야기-5

예수님의 후반전을 위한 성령이야기-5
사도행전10:1-5 & 44-48

성령의 내적충만은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듣게 한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마음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피로써 나를 정케 하소서
진공관 앰프가 나오기 전, 우리는 축음기를 통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널리 알려진 RCA victor 회사의 축음기 상표를 보면 축음기의 큰 나팔 앞에 개가 앉아있고 ‘주인의 음성(His Master’s Voice)’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이름모를 가수가 돈을 드려서 LP판을 내었습니다. 그는 수없이 자신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자 그가 키우던 Nipper라는 개가 주인의 음성이 그리워서 축음기의 나팔 앞에서 떠나지 않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감동의 이야기가 일파만파가 되었습니다. 아마 연세가 있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축음기 나팔 앞에 바싹 다가가서 나팔 안쪽을 주시하고 있는 상표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림을 보니까 잔잔한 감동이 다가옵니다.
신학자 에밀브르너는 하나님 말씀을 ‘주인의 음성(my master’s voice)’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 어떻게 주인의 음성으로 들릴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면 들리는 것입니다. 가시고기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사람은 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의 주장이 성령의 음성을 막아버립니다. 성령충만 하십시오, 성령충만할 때 나의 생각을 사로잡아 주님께 복종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가 들은 모든 주님의 음성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사랑한다”입니다.
그래서 다른 찬송가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고넬료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왔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절 이하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devout)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God-fearing)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6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성령의 내적 충만한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로마 총독의 경비대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정은 오픈되었기에 열방을 향한 성령의 물꼬가 터지는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고넬료가 그렇게 사용받을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보시기에 그의 삶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는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을 향한 복음역사를 다시 시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후반전의 수문을 열기에 합당한 가정이었습니다.
추측컨데 그가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기 위해 성경 역사서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말씀에 사로잡혔을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 영으로 그의 속사람을 향하여 들어가 그를 성령으로 충만케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내적충만 경험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내면에 에너지가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었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구제하는 것이 그의 삶의 스타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사랑이 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령의 내적충만은 이조시대의 문과급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외적충만은 능력의 사람으로 세우신다.
어떻게 보면 게세마네 제자들은 성령의 내적인 충만함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내면에 들어가 있어서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의 외적충만함인 오순절의 성령세례를 통한 외적충만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들어서 아니까 마음엔 원인데 주님과 함께 깨어서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주님을 따라 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있는 낙망이라는 무거운 추는 그들을 끌어내렸고 졸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자신들의 육(flesh) 위에 물붓듯이 부어졌고 그날부터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이름하여 무과급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은사들이 드러났듯이 고넬료의 집에
이방을 향한 성령세례가 터지면서 성령의 외적충만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10:44-48절에서 그 현장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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